[조상원 박사의 알기쉬운 예배학] Chapter 2. 예배의 정의(The Definitions of Worshi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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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원 박사의 알기쉬운 예배학] Chapter 2. 예배의 정의(The Definitions of Worship)(2)
  • 개혁타임즈(Reformed Times)
  • 승인 2020.02.1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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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하트의 예배의 정의, “우리 인간은 우리의 삶의 방식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야 한다.”

마이클 슐러의 예배의 정의, “오로지 하나님만이
모든 찬양과 경배와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과 예배에서 결코 사람이 중심이
되지 말아야 하고, 사람이 관심을 받지 말아야 한다.

 

조상원 박사(Ph.D, 광신대 교수)
조상원 박사(Ph.D, 광신대 교수)

1. 웨스트민스터 요리 문답이 말하는 예배에 관한 정의

2. Louie Gigloi의 예배에 대한 정의

 

3. John E. Burkhart의 예배에 대한 정의

 

버크하트는 “우리 인간은 우리의 삶의 방식(in ways of our life)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하여(through whatever we do)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여야 한다”라고 예배를 정의한다.

 

그는 예배는 의식으로만 끝나는 일종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공적인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사람은 절반만 예배하는 사람이다. 가정, 직장, 그리고 교회 밖의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고 예배하는 심령과 예배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예배이다. 교회 안의 생활과 밖의 생활이 다르다면 그 사람은 온전히 예배하는 사람이 아니다. 생활의 모든 부분과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과 그가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끊임없이 감사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에게 경배를 받으시는 것은 합당하고 당연하다. 피조물인 인간이 무엇인가를 얻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않다. 절대자 하나님은 어느 상황에서든지 혹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항상 경배를 받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시고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인간은 개개인마다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이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의 모든 방식을 통해서(in ways of our life) 영광을 받으시고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시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부득히 하게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가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대한 자발적 반응이다. 하나님은 그를 예배하는 인간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자혜로운 분이시다. 항상 우리 곁에서 좋은 것을 주시는 수여자 하나님(God as a living giver)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존귀히 여기고 높이는 삶이 곧 예배의 삶이다. 

 

죽은 생명체는 움직임이 없다. 죽은 생명체는 어떤 반응과 충격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예배자는 모든 면에서 살아 움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만약 당신이 큰마음을 먹고 참으로 진귀한 선물을 준비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상하고 크게 실망할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의 작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도시에 가난하지만 사랑이 넘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살았다.성탄절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각각 걱정이 되었다.서로에게 선물은 하고 싶은데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 짐은 아내의 긴 머리에 꽂을 머리핀을 사기로 마음먹고 갖고 있던 시계를 팔기로 결정했다.아내 델라는 남편에게 시계줄을 선물하기로 하고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았다. 두 사람은 시장으로 나가 선물을 구입했다. 짐과 델라는 서로를 기쁘게 할 마음으로 거의 같은 시간 집에 도착했다.짐은 머리핀을 들고 아내의 머리에 꽂아 주려고 했으나 아내의 머리는 이미 짧게 깎여 있었다. 델라 역시 시계줄을 들고 있었으나 남편에겐 이미 그 시계가 없었다. 준비된 선물은 쓸모없게 됐지만 둘은 곧 부둥켜 안고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도 귀한 선물들을 수없이 받고 살아간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다. 평생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선물을 받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그리워하는가? 얼마나 하나님을 열망하고 있는가? 날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표현에 대해 별로 감사하지 않는 것 같다. 짐과 델라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 사이가 이렇게 뜨겁게 반응하는 친밀한 사이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4. Michael W. Schuler의 예배에 대한 정의

 

마이클 슐러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모든 찬양과 경배와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라고 예배를 정의한다. 

 

예배 중에 사람이 중심이 되고 사람이 높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창조주 위에 군림하는 불경을 저질러서는 결코 안 된다. 사람이 높아지고, 사람이 영광을 갈취한다면 그 예배는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하다.

 

대통령이 찾아와도 사람들의 관심이 그에게 돌아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경배의 대상이 애매 모호하거나 흐트러지면 안 된다.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모든 예배의 의식과 그 의속 속에 담겨진 의미와 가치가 오직 그에게만 돌아가야 한다. 예배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예배제도를 설립하시고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원리와 정신에서 벗어난 어떤 예배나 예전도 온전한 예배로 성립될 수 없다.

 

이 시대의 타락한 예배를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찬양의 내용도 의미도 사라진채로 고막을 찢을 정도로 시끄러운 기계음이 예배자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람과 기계와 악기들이 눈부시게 부각되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하고 할 수 있는가? 그저 강렬한 비트에 몸을 맡기고 열광하는 찬양과 예배의 현장에서 과연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까? 시내 산에 밑에서, 하나님 없이 금송아지 앞에서 광란의 춤을 추면서 “예배한다”했던 그들이 생각나지 않는가? 지금 이 시대에 수많은 찬양집회들과 예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집회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본주의의 절정을 보는 듯 하다.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를 한번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온몸을 덜덜 떨면서 엎드렸던 이사야 선지자를 생각해보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라”(사6:3-5)

 

예배는 거룩하신 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 그를 뵙는 자극히 거룩한 축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예배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콘서트가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서 자신의 죄 때문에 엎드려야 한다. 통곡해야 한다. 교만과 욕심과 온갖 더러움을 토해내야 한다. 온갖 죄를 뒤집어 쓴 채로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과 예배에서 결코 사람이 중심이 되지 말아야 하고, 사람이 관심을 받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처럼 모두가 먼저 엎드려야 한다. 자신의 죄와 악함을 철저하게 회개하여야 한다. 회개할 때,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가 임하고 진정한 예배의 감격이 임한다. 회개할 때 성령님이 임하신다(행2장). 

 

이제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제 사람들은 관심을 받고 영광을 받는 자리에서 내려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엎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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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원 박사

조상원 박사는 예배학으로 영국에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개신대학원대학교(구, 개혁신학연구원, M.Div)
미, City University of Seattle(Bs.C)
영, University of Wales, Trinity Saint David(Ph.D), 예전 및 예배학 전공
현, 광신대학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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