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총회 화해중재위원회의 역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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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총회 화해중재위원회의 역할에 대하여
  • 개혁타임즈(Reformed Times)
  • 승인 2020.03.1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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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로부터 화해중재의 임무를 부여받고 활동을 하다보니 분쟁
하는 양편으로부터 보내오는 서신을 받는다. 내용은 상대편은
그르고 자기 편이 옳다는 내용이다. 화해중재위원회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 주려는 위원회가 아니다.

양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큰 싸움도 파고 들어가 보면 서로
대립된 두 사람 때문이다. 두 사람만 화해하면 될텐데 사람
들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덤불 싸움이 되게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화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끝까지 감정으로 대립하고 자기 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분쟁하려는 측에는 따끔한 매를 제시하며 중재를
시도할 필요성도 가지고 있는 위원회이다.

 

김종희 목사(총회 정치부장 역임. 화해중재위원회 서기. 성민교회 담임)

 

김종희 목사(제101회 총회 정치부장 역임. 제104회 화해중재위원회 서기. 성민교회 담임)
김종희 목사(제101회 총회 정치부장 역임. 제104회 화해중재위원회 서기. 성민교회 담임)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는 속담이 있다. 양쪽의 말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어서 어느 편이 옳다고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분쟁하는 양편을 만나보면 다들 자기들 말이 옳다고 항변한다. 요즘 우리 주변에 분쟁이 많은 것 같다. 총회로부터 화해중재의 임무를 부여받고 활동을 하다보니 분쟁하는 양편으로부터 보내오는 서신을 받는다. 내용은 상대편은 그르고 자기 편이 옳다는 내용이다. 얼마 안 있으면 분쟁하는 곳을 방문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화해중재를 맡은 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분쟁하는 이들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마음을 이 글로 옮겨본다.

 

Ⅰ. 서로 망하는 싸움을 중단해야 한다.

과거 10시간 마라톤 회의를 하면서 분쟁하는 양측에 말씀으로 권고를 했던 적이 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두려움을 느끼며 서로 용납하고 화합하는 것을 권면하였다. 극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졌다. 그 때 필자가 깨달은 것이 있다. 다투다 보니 감정이 악화되어 갈 때까지 간 경우라도 거듭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마음이 동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서로 망하는 싸움을 중단하자. 그런데 일반 교인끼리 분쟁한다는 말은 별로 듣지 못했다. 분쟁에는 목사와 장로, 아니면 장로와 장로가 대립하고 있었다. 양편으로 나뉘어 싸우는 큰 싸움도 파고 들어가 보면 서로 대립된 두 사람 때문이다. 두 사람만 화해하면 될텐데 사람들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덤불 싸움이 되게 한다. 두 사람 중 하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까? 저 화장실에 있는 구더기가 서로 몸통이 더 굵다고 꼬리가 더 길다고 싸운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비웃을 것이다. “쳇, 구더기 주제에...” 도토리 키재기의 싸움은 그만하자. 조금 더 낫다면, 얼마나 더 낫고, 못하다면 얼마나 더 못하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보면 모두가 구더기 같은 죄인인데(욥25;6) 서로의 평안을 위해 나 자신을 죽이고 쳐서 복종시키자. 서로 상생하는 길을 택하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Ⅱ. 사법으로 해결하려는 자체가 허물이 된다.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법에 고소한 모든 것을 취하해야 한다. 상대방보다 자신이 낫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하여 사법의 문을 두드렸으나, 이미 그 자체가 허물이 된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7절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 하였다. 차라리 당하고 속고 마는 것이 낫다. 소송으로 간 것을 부끄러워 하며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

 

Ⅲ. 분쟁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상처를 주는 일이다.

과거 자기 마음에 안맞는다고 교회를 나누려는 K 집사님을 찾아가 권면한 적이 있다.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집을 심방했다. 잠시 심방예배를 인도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집사님, 주의 종에게 서운한 것이 있으시면 용서하세요. 교회를 나누는 것 만큼은 안됩니다.” 그러자 그는 같이 무릎을 꿇고는 법정에 선 증인이 선서를 하듯이 오른손을 치켜들고 말을 했다. “나는 이미 응답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나누는 것에 대해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응답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나오는 태도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나누라고 응답을 하셨다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교회는 결국 갈라졌다. 그 후 이런 소식이 들려왔다. “K 집사님 막내 딸이 개천에 달팽이를 잡으러 갔다가 물에 빠져...” 그 사건의 의미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순간 교회를 나눈 옛 일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 매 맞을 일은 하지 말자.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총회 화해중재위원회 중재 모습
총회 화해중재위원회 중재 모습

Ⅳ. 성령님께 순종하면 해결이 된다.

독일의 나찌 치하에서 말할 수 없는 잔인한 핍박과 학대를 받았던 화란의 코리텐 붐 여사의 간증이다. 전쟁이 끝났을 때 자신을 고문하고 학대하던 독일 사람들이 미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셨다. 복음을 전한 어느 날 코리 여사는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인사하기 위해 자기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 중에 뜻밖에도 독일의 그 감옥에서 자기를 고문하고 자기 언니의 목숨을 앗아간 간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코리는 자기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다.“그 순간 내 심장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나는 한마디로 하나님 저 인간만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코리의 마음 속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었다. 코리야, 용서해라, 하나님 용서할 수 없어요, 용서해라, 못해요, 이렇게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에 그 사람은 벌써 코리의 눈 앞에까지 왔다. 그런데 그 순간 코리의 마음 속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나는 네가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겠느냐 안하겠느냐를 묻는 것이다. 용서하라는 것은 나의 명령인데 내 명령 앞에 순종하겠느냐 안하겠느냐?” 코리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지만 용서해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이 내 마음 속에 깨달아지는 순간 하나님 명령이라면 할 수 없지요. 그러면 용서해야지요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과 느낌도 없이 다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내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손을 내밀어 그를 안는 순간 주께서 내 마음 속에 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는 느낌을 부어 주셨다” 그러면서 그녀는 그 일기장의 마지막에 이런 인상 깊은 글을 썼다.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였다. 분쟁 중에도 순간 순간 성령님께서 마음을 노크하실 때가 있을 것이다. 용서해라, 화해해라, 그 때 성령을 거스르지 말고 순종해 보자. 사도행전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Ⅴ. 내가 죽으면 해결된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 교회 기둥같은 장로님” “우리 교회 기둥같은 집사님”이라고 한다. 기둥은 몇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기둥은 밑에 서야 한다. 기둥은 밑에서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것이지 위에서 군림하지 않는다. 기둥이 지붕 위에 서있는 집을 본 적이 없다. 기둥같은 일군은 교회의 어려움을 밑에서 묵묵히 지고 가는 일군이다. 또한 기둥은 밑에 서있으면서도 드러나지 않게 숨어 있다. 만약 기둥이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서 거치적거리면 불편할 것이다. 교회의 기둥같은 일군은 힘든 일을 맡아 감당하면서도 생색내지 않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하는 일군이다. 또한 기둥은 같이 서야 한다. 여러 기둥이 같이 있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자신 만이 제일이라는 식의 교만과 독선은 금물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함께 일할 줄 아는 겸손한 일군이 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기둥은 죽은 나무라야 한다. 살아 있어서 맘대로 가지를 뻗으면 집에 균열이 생기고 위험할 것이다. 교회의 기둥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는 일군이어야 한다. 나 한 사람이 죽어 교회가 평안하다면 내가 죽자.

 

Ⅵ. 결론

분쟁을 계속하면 피차 망한다. 너도 잘못이 있지만 나도 잘못이 있다. 조금 더 옳고 그를 수 있지만 도토리 키재기의 싸움이다. 사법으로 가는 것 자체가 허물이다. 기도하다 보면 성령님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가 있다. ‘그만하고 화해할 수 없겠니?’ 그 음성에 순종하자. 자존심만 버리면 된다. 그리고 한쪽을 죽이고 자신만 살려고 하지 말고 상생의 길을 택하자. 내가 문제가 아닌가? 나만 죽으면 된다. 교회 기둥은 죽어야 한다. 하나님은 자기를 죽이는 자의 편이시다. 지는 것 같아도 그것이 이기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선이 악에게 지는 것 같았으나 최후의 승리는 선의 승리였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들이 이긴 줄 알고 만세를 불렀으나 결국 예수님이 이기셨다. 이긴 것 같아도 지는 싸움이 있고 지는 것 같아도 이기는 싸움이 있다. 싸움으로 결말을 보려고 하지 말고 화해하고 양보하며 결말을 내자. 화해중재위원회는 어느 편의 손을 들어 주려는 위원회가 아니다. 말씀으로 돌아가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화해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끝까지 감정으로 대립하고 자기 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분쟁하려는 측에는 따끔한 매를 제시하며 중재를 시도할 필요성도 가지고 있는 위원회이다. ‘신종 코로나 19’로 예배도 마음놓고 드릴 수 없는 때가 왔다. 지난 날 우리의 허물과 죄를 돌아보아 회개할 때다. 지금은 서로 물고 먹으며 싸울 때가 아니다. 서로 화해하고 힘을 모아 함께 기도할 때다.

 

총회 화해중재위원회의 중재 후 모습
총회 화해중재위원회의 중재 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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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목사는

제101회기 총회 정치부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부산성민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제104회기에서는 총회 화해중재위원회
서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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