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문제점들
III.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실천적·신학적 문제
IV. 나가며
◁보충 논의 4▷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상민 의원 대표 발의)에 대한
기독교 윤리학적 비평
박재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조직신학 및 기독교윤리)
I. 들어가며
먼저 밝힐 점은 본고의 논지 전개 방향성의 궁극적 기준점이 세속사회의 고상한 가치, 예를 들면 헌법적 가치, 기본적 인권의 가치, 법률 일치·불일치의 가치 등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는 헌법학자들과 법률가들이 책임감 있게 해야 할 책무라고 믿는다). 오히려 본고의 논지 전개 방향성의 궁극적 기준점은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 윤리학적 가치라는 사실을 주지하며 글을 시작하도록 하겠다. 즉, 본고의 주된 목적은 이상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발의연월일: 2021.6.16.)에 담긴 내용을 기독교 윤리학적으로 고찰·비평·비판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본고가 비판하지 않는 것과(즉 동의하는 것과) 비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비판하지 않는 것(즉, 동의하는 것)
(1)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제안이유인 「대한민국헌법」이 주장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여야 하고”라는 ‘기회 균등’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즉 동의한다).
(2) 「대한민국헌법」 제10조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라는 ‘인간성 존중’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는다(즉 동의한다).
(3) 「대한민국헌법」 제11조 제1항의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법 앞에서의 평등’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는다(즉 동의한다).
2. 비판하는 것(즉, 반대하는 것)
(1) 하지만 ‘기회 균등,’ ‘인간성 존중,’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가치들의 범주와 범위들이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전반에 걸쳐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형성된 내용에 대해 비판한다.
(2) ‘기회 균등,’ ‘인간성 존중,’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긍정적인 수사 뒤에 숨어 있는 부정적 독소조항과 악법적 가치에 대해서 비판한다.
(3) 기독교 윤리학적 앵글로 「평등에 관한 법률안」 내용을 살필 때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내용들에 대해서 비판한다.
만약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려는 시도라면, 본고가 지닌 논조와 논지도 어떤 차별의 대상도 되서는 안 된다는 점이 확보되어야 논리적 일관성을 갖는 것이라고 믿는다.
본고의 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기독교 윤리학적으로 살펴봤을 때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들을 지적한 후, 만약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어 적극적으로 시행될 때 불거질 수 있는 실천적·신학적 문제를 고찰한 후 글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다.
II. 기독교 윤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문제점들
1. 소위 ‘평등’을 세운다는 명목하에 기존의 유의미한 가치들을 전복시키는 행위
(1) 분류하기 어려운 성: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1장 제3조에서 “성별”을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하기 어려운 성”이라고 용어를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분류하기 어려운 성”이라는 표현을 삽입함을 통해 기존의 남성과 여성 개념과 다른 성 정체성을 합법적으로 용인하려 하고 있다. 만약 남·여라는 기존의 성별 가치관이 무너지고 합법화되면 기본적인 결혼관, 가정관, 부모관 등이 심각하게 전복되어 윤리적 무질서가 난무한 사회가 될 것이다.
(2) 성적 지향성: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1장 제2조에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앞서 논의한 “분류하기 어려운 성” 즉 “성별 정체성”도 문제지만 “성적 지향[도] …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라는 표현도 이에 못지않게 문제이다. 상대화, 다각화, 해체화로 대변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급습 아래 성적지향 또한 상대화, 다각화, 해체화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온갖 종류의 성적 지향이 난무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비정상적인 성적 지향성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의 근본 토대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평등이라는 명목하에 성적 지향성을 자유분방하게 합법화하면 성적 질서론보다는 성적 방종론(sexual laxism)으로 사회의 방향성이 궁극적으로 지향되어 사회적, 윤리적 혼란이 가속화될 것이다.
(3)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1장 제2조에는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 등 어떠한 사유로도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사회가 급변해서 소위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 사이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결혼을 거부한 채 정자·난자를 기증받아 홀로 아이를 키우는 ‘비혼 가정’ 혹은 ‘대리부(모) 가정,’ 남남 커플 혹은 여여 커플로 구성되어 생물학적 자녀가 없는 ‘동생애 가정,’ 혹은 ‘미혼모 가정’이나 ‘미혼부 가정’ 같은 가정형태 및 가족상황이 일반화가 되어질 때 불거질 수밖에 없는 윤리적 문제들은 여전히 산적하다고 볼 수 있다.
2. 법률안 표현이 가진 애매모호함·불분명함과 자의적 해석 가능 지점이 많은 문제
(1) 괴롭힘: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1장 3조 7항에 보면 “괴롭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괴롭힘’이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하여 …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경우를 말한다. 가. 적대적, 위협적 또는 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나.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을 야기하는 행위. 다.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 관념의 표시 또는 선동 등의 혐오적 표현을 하는 행위.” 하지만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등은 대단히 주관적인 감정이다. 괴롭힘에 대한 뚜렷한 객관적 기준과 객관적 범주 설정이 없는 상태로 괴롭힘에 대한 이런 내용이 담긴 법안이 통과되어 실행되면 주관주의에 근거한 온갖 종류의 소송·고발만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상대방의 의도·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나 스스로가 주관적으로 수치심, 모욕감, 두려움, 멸시, 위협 등을 느꼈다면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해 고소·고발이 가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고용: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3장 13조 ‘모집·채용에서의 차별금지’에는 “성별 등을 이유로 모집·채용의 기회를 주지 않거나 제한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으며, 16조에서는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직무나 직군에서 배제하거나 편중하여 배치하는 행위”도 금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입장에서 볼 때 추구하는 정체성이 현저하게 다르거나 단체가 추구하는 사상, 이념, 가치관이 현저하게 다른 후보자를 고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기업·학교·교회 같은 단체는 각 단체가 추구하는 정체성, 가치관이 뚜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고용에 있어 이런 형식으로 차별금지 평등법이 제정된다면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이 고용되어 한 단체의 사상적 일관성이 깨어진 결과 한 마음, 한뜻으로 단체의 유익·이익을 도모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3. 소수가 다수를 차별하는 역차별 문제
(1) 역차별 문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기본 논지는 다수보다는 소수를 위한 법이다. 물론 소수가 더 존중받아야 하고 옳고 바르게 대우받아야 하는 것은 맞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를 위한다고 해서 소수 때문에 다수가 차별받는 역차별 논리는 위험하다. 역차별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소위 “분류하기 어려운 [소수의] 성”을 존중한다는 명목하에 다수인(일반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 차별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2) 소위 “[소수의 다른] 성적 지향성”을 존중한다는 명목하에 다수인(일반적인) 성적 지향성이 차별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3) 소위 “[소수의 다른] 가족형태와 가족상황”을 존중하는 명목하에 다수인(일반적인) 가족형태와 가족상황이 차별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만약 소수도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한다면, 역논리로 다수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이 지점이 해결되어야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내부적 논리성이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4. 국민의 자유권 제한 문제
(1) 표현의 자유 제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3장 26조는 “방송 등 서비스 제공·이용에서의 차별”을 금하고 있으며 27조에서는 “문화·체육·오락의 공급자는 성별 등을 이유로 문화등의 공급·이용에서 배제·제한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성 정체성, 성적 지향성, 가족형태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들이 있을텐데 더 이상 방송 및 문화 미디어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언급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 종교의 자유 제한: 종교야말로 세속적 가치관이 아닌 자기 종교가 가진 경전(經典)에 따라 신앙 가치관을 설정해 따르는 신앙공동체이다. 종교는 경전에 따라 실천해야 할 신앙적 양심을 핵심적 가치관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만약 자신들의 경전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를 향해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신앙적 행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만약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되면 소위 ‘평등’이라는 이름하에 종교는 종교만의 독특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국민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마저도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말 것이다.
5. 지나친 구제 조치와 처벌·손해배상 조항 문제
(1) 법원의 지나친 구제 조치: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4장 35조는 차별을 받은 대상을 향해 법원이 “차별의 중지, 임금 그 밖에 근로조건의 개선, 차별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등을 이행하라는 판결”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소위 피해자는 주관적이고도 자의적인 “괴롭힘”의 범주하에 의도적으로 피해를 호소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 국가 법원이 지나치게 개입하여 일선 단체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형국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된다. 물론 국가의 법적 통제와 개입이 필요할 때도 많다. 하지만 「평등에 관한 법률안」에서는 국가의 통제 및 개입과 개인과 단체의 자유권 사이에 존재하는 딜레마와 모순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크게 기운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어 이 점이 우려된다.
(2) 처벌 및 손해배상 조항 문제: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4장 36조에서는 “차별 피해자가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소위 ‘징벌적 배상’인데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전반에 걸쳐 애매모호함과 불분명함이 산재해있는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분명 향후 문제의 소지가 큰 손해배상 형식이다.
III. 「평등에 관한 법률안」의 실천적·신학적 문제
(1) 고용의 문제: 다소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도록 하겠다(하지만 충분히 현실 가능한 논리이다). 만약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공표·실행되면 일선 어린이집 교사 모집에 소아성애증(pedophilia)을 가진 후보자가 지원해 ‘소위 차별을 받지 않은 채’ 채용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는 분명 문제가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일선 교회 교역자 초빙 공고에 남성성, 여성성, 제3의 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트라이젠더(trigender)가 지원해 ‘소위 차별을 받지 않은 채’ 합격되어 교회 사역 중 ‘가정 사역’을 담당하는 교역자가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것도 분명 문제가 아닌가? 신학교를 생각해보자. 신학교 교수 초빙 공고에 다자성애를 지향하지만 현재는 동성애 가정을 이루고 있고 관음증인 스코포필리아(scopophilia)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후보자가 ‘소위 차별을 받지 않은 채’ 최종 합격되어 기독교 윤리학 과목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도 분명 문제가 아닌가?
핵심은 무엇인가? 고용을 할 때는 각 단체마다 내규에 따른 ‘기준점’에 준해서 하는 것이 맞다. 이는 차별이 아니라 당연한 상식이다. 「평등에 관한 법률안」은 이런 당연한 상식을 평등이라는 명목하에 전복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우려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2) 차별과 차이의 문제: 차별과 차이는 같지 않다. 즉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차별을 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다. 그것이 창조 질서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즉 차이가 있다고 해서) 남자를 차별하거나 혹은 여자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평등에 관한 법률안」은 차별과 차이의 기본적인 관계성마저도 혼동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만약 차이 때문에 차별이 발생한다면 사회적 합의 위에 그 차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 모든 차이를 차별로 상정한 후 모든 차이를 아예 전복시키고 날카롭게 거세해버리는 식으로 소위 ‘금지’ 법안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법적 폭력’이다.
IV. 나가며
물론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1장 5조에는 어느 정도 대안책도 마련해놓고 있다. “1. 특정 직무나 사업 수행의 성실상 불가피한 경우 … 3. 다른 법률의 규정에 따라 차별로 보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안책은 쏟아지는 비판을 침소봉대하려는 미봉책 정도로 보인다. 그 이유는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전반에 걸쳐 표현된 논조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오히려 차별에 해당하는 것과 처벌 규정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는 논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윤리학은 성경적인 가치관 위에서 삶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학문이다. 남과 여라는 성 정체성의 창조 질서, 역리(逆理)가 아닌 순리(順理)에 근거한 성적 지향성, 부모와 자녀라는 가정 형태를 지향하고 있는 기독교 윤리적 관점으로 봤을 때 「평등에 관한 법률안」은 수용 가능한 범주 너머에 위치한 법률안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평등에 관한 법률안」은 질서보다는 방종으로, 평등보다는 역차별로, 자유보다는 억압으로 우리를 이끌 것 또한 자명하다.
위 글은 전국신학대학 517명의 교수들이 6월 3일 오후 1시30분 사당동 총신대 제1종합관 주기철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독소조항 포함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즉 후 보충 논의 발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