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원 박사의 알기쉬운 예배학] Chapter 2. 예배의 정의(The Definitions of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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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원 박사의 알기쉬운 예배학] Chapter 2. 예배의 정의(The Definitions of Worship)
  • 개혁타임즈(Reformed Times)
  • 승인 2020.02.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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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요리 문답,
“인간의 존재 목적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
Louie Gigloi,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임재를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즐거워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조상원 박사(Ph.D, 광신대 교수)
조상원 박사(Ph.D, 광신대 교수)

예배는 교회에 주어진 가장 거룩하고 고귀한 사명이자 성도의 참된 의무이다. 또한, 예배는 교회의 의식들과 성도의 삶에서 가장 주요한 행위이다. 예배는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은 예배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다. 여러 학자들의 예배에 관한 다양한 정의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웨스트민스터 요리 문답이 말하는 예배에 관한 정의

 

웨스트민스터 요리 문답에서는 “인간의 존재 목적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존재하는 근본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임을 전인적으로 인식하고 살아야 하겠다. 지금 내가 살아서 숨 쉬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높이는 예배와 직간접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이 예배이다. 지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우리모두는 예배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이 백성을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여기서 “찬송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테힐라 תהלה’인데,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찬양하는 노래를 의미하고, 또 다른 하나는 경배대상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를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구약에서, “찬양”은 “예배”와 병행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목적이 예배를 위함이다. 나를 지으신 목적이 우리가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그를 경배하고 높이는 예배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신 이유가 예배이며, 내가 존재하는 절대적 이유가 예배이다. 내가 건강관리 잘해서, 그리고 내가 인생을 잘 살아서 나의 삶이 유지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매일 매일 수많은 사고들과 재앙들이 일어난다.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5분 앞의 일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다. 2018년 12월에 이탈리아 제노바 모란디 다리가 갑자기 끊어져서 40 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 운명의 다리를 지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된 일을 잠시 쉬고 휴양을 하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시간에 그 다리가 무너지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까? 정말, 인간은 5분 앞에 일어날 일도 모르는 너무도 연약한 존재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과 삶과 건강과 은혜와 복을 주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주신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를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시118:17)

 

여기에서 ‘의의 문’은 거룩한 시온 성의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에 넘기지 않고 보존해준 목적이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 앞에 나아가 ‘예배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오래전에 대형교회 교구목사로 사역 한 적 있다. 한 성도가 하는 말이 “지난 주일날 죽을 번 하였습니다”라고 하면서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남편이 시청의 고위직에 근무하는 분인데, 예배드리는 주일에 직장 야유회에 함께 가자고 강력하게 요구를 해서, 하는 수 없이 한 번도 빼 먹은 적이 없는 주일을 어기고 직장야유회에 갔다고 한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돌아오다 전복사고가 크게 나서 차를 폐차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다 무사하고 찰과상 정도로만 다쳤어요! 하나님이 살려주셨어요!” “하나님이 다시 기회주신 것이지요. 다시는 주일을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 분은 나름대로 주일에 일어난 큰 사고에서 생명을 건져주신 것을 다시 예배자로 온전하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생명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믿음으로 받아 들였다.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그를 예배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예배에 임하자.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 그리고 내가 지금 호흡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이 목적에 부합하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인생을 의미있고 가치 있게 사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라고 말 할수 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근본적으로 인간은 행복을 누릴수 있다. 

 

2. Louie Gigloi의 예배에 대한 정의

 

Louie Gigloi는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임재를 세상 그 어느 것보다 더 즐거워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라고 정의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온전하게 예배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좋은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가장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죄가 들어 오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주어진 근본적인 기쁨이 사라졌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우러러볼 때, 가장 완전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인간의 거역과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 본래의 기l쁨을 잃어 버렸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근본적인 기쁨을 회복하도록 우리 인간에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감당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다시 화목의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과 화목의 관계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이 주시는 근본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최고의 사랑과 경외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예배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고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과연 예배자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그가 베푸시는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진정으로 경험하는 사람은 세상의 기쁨에 더이상 목말라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함으로 인하여 부여되는 천상의 참 기쁨을 잃어버린 오늘날의 예배자들이 세상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쾌락에 목말라 있다. 소위, ‘대체적인 기쁨(alternative pleasures)’에 익숙해져 있다. 사사기에 보면, 당시의 예배자들이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쾌락과 풍요의 신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빠져드는 한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이 시대의 예배자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나님을 겉으로는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하는 예배자들이 교회 밖을 벗어나면 스스럼없이 세상이 주는 쾌락에 빠져든다. 이 시대에도 다니엘처럼 왕궁에서 제공되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려고 목숨을 거는 예배자들을 과연 찾아볼 수 있을까?  지금 세상은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이 팽배한 세상이다. 모든 절대적 가치나 규범이나 종교의 교리나 체제나 가정제도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것과 현재 적 욕구를 충족해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즉, 세상 문화의 흐름이 너무 강력하다. 세상 문화와 그 흐름이 신앙이나 교리를 삼키는 그런 세상에 와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참 기쁨과 자유가 왜곡되고 있다. 

 

“간음하는 여인들아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약4:4)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1서2:15-16)

 

포도주 마시는 문제에 목숨을 걸었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꽉 막힌 어리석은 바보였는가?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함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고한 기쁨과 감격을 세상의 쾌락과 바꾸지 않았던 산 순교자들이었다. 이 시대의 예배자들이여! 가짜 쾌락과 기쁨을 선사하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속히 세상에서 도망쳐 나와라.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을 빼앗아가는 세상에서 돌이켜 기쁨으로 근원이 되시는 여호와께로 급히 돌아와야 한다. 세상의 현란한 쾌락의 골짜기를 속히 벗어나야 살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주시는 천상의 지고의 기쁨을 맛볼 수가 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가는 봄 소풍이 아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이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영적 전쟁이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아무런 분별 없이 많은 영혼들이 멸망으로 가는 넓은 문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다. 거기에서 돌이켜 여호와께로 속히 돌아와야 한다. 속히 도망쳐 나와야 한다.

 

“살기 위해 도망쳐라. Run for your life!”

“죄악의 장소에서 도망쳐 나와라. Get out of it”

 

세상이 주는 가짜 쾌락이 아닌 진짜 기쁨을 맛보아야 한다. 다윗처럼 하나님이 자기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해 두신 천상의 기쁨을 받아 누려라.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4:7-8)

 

다윗의 이 주체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을 다시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부터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 사라지고 그저 밋밋하게 의식에게만 참여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은 곡식과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나이다”라는 다윗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 거룩하고 숭고한 지고의 기쁨을 다시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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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원 박사


조상원 박사는 예배학으로 영국에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개신대학원대학교(구, 개혁신학연구원, M.Div)
미, City University of Seattle(Bs.C)
영, University of Wales, Trinity Saint David(Ph.D), 예전 및 예배학 전공
현, 광신대학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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